091013_홀로 떠난 독일/스페인 여행_①

공항으로 가는 공항버스를 타는 일은 언제나 설레인다.
공항버스 창 밖으로 보이는 서울의 풍경, 한강의 풍경은
분명 익숙하고 낯익음에도 참 이상하리만치 낯설고 이국적이며,
다시는 못 볼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사람을 감상에 젖게 만든다.

딸내미 홀로 유럽에 날아간다는데 걱정은 되지만 똥고집 꺾을 자신이 없어 마지못해 오케이 한 엄마는
굳이 됐다는데도 도심공항터미널까지 배웅을 나오셨다.
그런 조그마한 엄마와 창 밖으로 손 흔들며 인사를 하고,
올림픽 대로를 싱싱 달리는 차들을 바라보며 인천으로 향했다.

차 안에서 힘 내라는, 잘 다녀오라는 이런 저런 격려의 문자들을 받으니,
이제 정말 홀로 떠나는구나 싶어 나도 모르게 눈물도 조금 난다.
옆 사람이 보면, 1-2년 한국을 떠나는 사람인 줄 알았을거다.

유럽에서 나는 보름 간 혼자일테고,
아름다운 풍경도, 맛있는 음식도, 일이 꼬였을 때 속상함도
온전히 나 자신과 공유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.

[ 도심공항터미널의 비싼 리무진을 타고 고고싱 ]

독일에서 스페인으로 이동, 바르셀로나에서 세비야로 이동 등의 큰 동선은
미리 라이언에어로 예매를 해 놓은 상태였다.
유럽의 대표적인 저가항공 라이언에어!
그 저렴하고 기특한 가격만큼이나, 이용하는 공항은 도심에서 "적어도" 한 시간 반씩은 떨어져 있고,
몇 십분만 앉아 있어도 다리가 저릴만큼 비좁은 좌석을 자랑한다.
여튼, 미리 예매한 좌석의 boarding pass를 출력하기 위해
일찍 도착한 인천공항에서 동분서주 뛰어 다녔다.

이젠 정말 출발이다.

[ 아시아나 좌석 내 개인별 모니터. 와우! ]
 예전 ( 그러니까.. 벌써 4년 전인가 ) 에 독일 갈 때도 아시아나를 탔었지만,
그 때는 이런 좌석별 개인 모니터 따위는 없었다.
그 당시에는 중앙에 있는 대형 화면을 열심히 보다가 재밌는 영화가 한다 싶으면
잽싸게 헤드셋을 끼고 중간부터 시청하는 것이 비행기 내 선택권의 전부였던 것이다.
그러했으니 이런 좌석별 모니터는 내게 긴 비행 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해 줄
멋진 장난감임이 틀림없었다.
노래도 선택할 수 있고, 영화도, 심지어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무한도전까지.
콜라 마시고, 맥주 마시고, 땅콩 먹고, 밥 준다고 하면 밥도 먹고,
자라고 불 꺼주면 쿨쿨 잠도 자고 유희열의 시시껄렁한 농담에 낄낄대다 보니
어느새 12시간이 흘러 나는 독일 땅을 다시 밟게 되었다.

[ Frankfurt fernbahnhof 에서 Wuerzburg 행 ICE를 기다리는 중 ]
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낑낑 짐을 찾고 fernbahnhof 쪽으로 나와보니,
한국에서 입고 온 칠부 소매와 반바지, 쪼리가 너무나도 무색할 정도로
코 끝 시린 바람이 불고 있었다.
벌써부터 부츠에 털 달린 점퍼에 머플러를 감고 다니는 독일인들의 시선을 받으며,
ICE를 기다리는 플랫폼에서 트렁크를 활짝 열었다.
다들 호기심 어린 얼굴로 내 가방 속을 안 보는 척 하면서 보던데.
머플러도 꺼내 칭칭 감고, 조리도 플랫으로 갈아신으니 그나마 좀 나아졌다.

아니 근데, 누가 봐도 딱 봐도 독일에 놀러 온 노란 얼굴 까만 머리 동양인인데
나에게 길을 묻는 독일인들은 대체 뭐란 말인가.
대뜸 S-Bahn 타려면 어디로 가야 하느냐는 둥,
내가 기다리는 ICE가 Frankfurt Hauptbahnhof도 들러 가느냐는 둥
독일에 왔으니, 이제 까먹어가던 독일어 연습 좀 하라는 배려였던 것인지...
암튼 도착 직후부터 잊혀져가던 독일어 감도 서서히 되찾고,
독일 공기에 미세하게 떠 다니는 독일인들의 데오도란트 냄새에도 익숙해지가 시작했다.

장시간 비행에, 7시간의 시차 때문에 몸은 참 힘들었지만
설레이는 맘에 나는 ICE에서 도저히 잠이 들 수가 없었다.
대신 마주 보고 앉아 학교 과제인 듯 보이는 프린트를 열심히 풀던 "훈" 대학생 둘,
빈 옆 좌석으로 다리를 쭉 펴고 앉아 뜨개질에 열심이던 할머니,
하루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듯 한 말끔한 양복 차림의 역시 "훈" 아저씨 들을 훔쳐보며
독일에 무사히 홀로 도착한 것을 맘 속으로 자축했다.

깜깜해 진 밤 9시 경 Wuerzburg Hauptbahnhof에 도착했다.
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있었고, 중앙역은 예전과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었다.
지친 얼굴로 퇴근하는 사람들, 잠시 스낵바에서 요기를 하고 있는 철도 직원들,
입구 앞에 꼬질꼬질한 모습으로 큰 개와 함께 어슬렁 대는 거지들까지도
내 기억 속의 그 곳 그대로였다.

부슬부슬 내리는 비에 반바지 밑으로 나온 내 다리에는 온통 닭살이 돋고
온 몸이 부르르 떨리기 시작했다.
우산을 꺼내려면 또 다시 트렁크를 ( 내 사생활을 ) 역 한가운데에서 오픈해야 하기에
일단은 그냥 역 밖으로 나가 예약해 둔 호스텔을 찾아가기로 맘 먹었다.
호스텔이 바로 역 코 앞이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오자마자 감기로 고생했을지도 모르겠다.

부들부들 떨며 생쥐 꼴을 하고 체크인을 1초 만에 끝내고
미리 예약해 둔 4명 도미토리에 들어가니 그 아늑함에, 무사히 도착했단 안도감에,
다리에 힘이 주욱 풀려 버렸다.
러시아에서 온 "사라" 라는 아이와 인사를 하고, 그 아이가 영상 채팅에 열중해 있는 동안
나는 뭐라도 먹어야 하기에 허기진 배를 붙들고 다시 거리로 나왔다.

[ Wuerzburger Hofbraeu & Doener_유럽에서의 첫 식사 ]
이미 밤이라 술 집 말고는 먹을 만한 곳들은 모두 문을 닫은 상태였다.
게다가 비까지 내리고 있으니, 멀리까지 갈 수도 없어서
내가 조아라 했던 근처의 되너 가게 집을 찾아가니 반갑게도 아직 문이 열려 있었다.
아직 문 열었냐고 뭐 먹을 수 있냐고 물으니,
느끼한 터키 아저씨는 얼른 들어와 앉으세요 아가씨 이러고 계신다.

참 좋아했던 기본 되너와 뷔르츠부르크에서만 파는 필스너 한 병을 시키고 기다리는데,
마치 한국에 돌아가서 지낸 4년이 한 두 달 정도로 느껴졌다.
그냥 쭉 이 곳에 머물렀던 것처럼, 전혀 낯설지 않고 그냥 그대로인 이곳이 너무 고마웠다.
피곤에 지친 상태에서 먹는 되너와 맥주는 조금 짰지만 정말이지 꿀 맛이어서,
와구와구 짭짭 먹어치운 후 다시 숙소로 돌아갔다.

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나니 이젠 정말 피곤이 물밀듯이 밀려왔다.
4명 방은 꽉 찼다. 작은 도시라 호스텔이 비어있을 줄 알았는데 의외였다.
( 의외로 뷔르츠부르크도 나름 관광지다! )

나 ( 관광이 아니라 그냥 뷔르츠부르크가 잘 있나 보러 온 오지랍퍼 )
일본에서 온 간호사 아줌마 ( 40대 분인데 홀로 독일 전역 여행 중. 영어도 꽤 하셨다.)
러시아 금발에 푸른 눈 아이 ( 여행 중임에도 노트북, 화상채팅용 카메라 등을 바리바리 챙겨왔다. )
유일한 독일 아이 ( 샤워하고 와서 잠옷을 입었는데도 눈에는 스모키 화장이 그대로였다 'ㅇ' )

한국에서 많은 일들을 겪어내고 이 곳까지 12시간을 꼬박 날아와서
또 뷔르추부르크까지 꾸역꾸역 찾아와 저녁까지 챙겨 먹은 내가
스스로 너무 기특해서 머리를 쓰담쓰담해주면서 깊은 잠에 들었다.







by 주꾸 | 2009/10/13 10:42 | 언제나 신나는 여행 | 트랙백 | 덧글(0)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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